나쁜사마리아인들 - 장하준
내가 대학에 입학할 때 즈음 베스트셀러였던 나쁜사마리아인들.
군(2010년 쯤?)생활을 하며 읽다가 불온서적이라는 평가에 집으로 얼른 보내버렸던... 그런 기억도 있다.
장하준 교수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적 경제 정책이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방해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선진국들이 과거에는 보호무역과 정부 개입을 통해 성장했음에도 개발도상국들에게는 이를 금지하고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모순을 비판한 책이다. 2007년 출간된 이 책은 당시 세계화가 급격히 확산되던 시대적 배경 속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러나 2020년대에 들어선 지금,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여전히 유효한가?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현실에서 적용될 수 있을까?
신자유주의의 지속성과 변화
출간 이후 약 20년이 흐른 지금, 신자유주의적 경제 질서는 변화를 겪고 있다. 과거에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orld Bank)이 자유무역과 민영화를 강력하게 요구하며 각국의 경제 정책에 개입했지만,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일부 정책적 유연성이 나타나기도 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국가 개입의 필요성이 더욱 강조되었고, 주요 선진국들도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시행하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개발도상국들은 외국 자본과 다국적 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IMF와 세계은행은 여전히 긴축 정책을 요구하는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2022년 아르헨티나와 스리랑카가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IMF의 구제금융을 받았지만, 그 대가로 강도 높은 재정 긴축을 강요받았다. 이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에서 경고한 신자유주의적 경제 개입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전략 변화
흥미로운 점은,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지적했던 "자유무역을 강요하는 선진국들"이 이제는 스스로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미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강력한 보호무역 정책을 시행하고 있으며, 바이든 행정부 역시 반도체 및 첨단 기술 산업 보호를 위해 중국과의 무역 갈등을 지속했다. 이는 과거 선진국들이 개발도상국들에게 자유무역을 강요하던 방식과 모순되며, 장하준 교수가 지적한 이중성이 더욱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반면, 중국은 국가 주도의 경제 정책을 유지하면서 세계 경제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전략적으로 핵심 산업을 육성하고 있으며, 이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강조한 "국가 개입을 통한 산업 보호" 전략과 일맥상통한다. 중국의 성공 사례는 개발도상국들에게 신자유주의적 정책보다 국가 주도의 발전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신자유주의의 재구성: 디지털 경제에서의 새로운 착취 구조
오늘날 경제 구조는 2007년과는 다소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제 신자유주의적 착취는 단순히 무역과 제조업 분야에서만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디지털 경제로 확장되고 있다. 빅테크 기업(구글, 애플, 아마존, 메타 등)이 주도하는 데이터 경제는 개발도상국들이 디지털 주권을 가질 기회를 박탈하고 있으며, 플랫폼 경제 속에서 신흥국들은 단순한 데이터 공급자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 선진국들이 제조업을 보호하면서 개발도상국의 산업화를 억제했던 방식과 유사하다. 즉, 디지털 경제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등장하고 있으며, 이는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문제의식이 여전히 유효함을 보여준다.
결론: 『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시사점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제기한 핵심 논지는 여전히 유효하다. 신자유주의적 질서는 형태를 달리하며 지속되고 있으며, 과거 보호무역을 활용했던 선진국들은 이제 자국의 이익을 위해 다시금 보호무역을 강화하고 있다. 개발도상국들은 여전히 불리한 경제 구조 속에서 자유무역을 강요받고 있으며, 디지털 경제 속에서도 새로운 형태의 경제적 종속이 나타나고 있다.
결국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제기한 문제의식은 단순히 과거의 역사적 사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경제 질서 속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이제 질문해야 할 것은, 이러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대안은 무엇이며, 개발도상국들은 어떻게 경제적 자립을 이룰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