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말씀은 베드로후서 1장 4절의 말씀이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베드로후서 1:4
우리 목사님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에 대한 설교를 하셨다.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이 서신서의 수신자들에 대한 이해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사도인 시몬 베드로는 우리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힘입어 동일하게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와 함께 받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 베드로후서 1:1
이 서신서의 독자는 사도 베드로와 동일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다.
사도들은 예수의 이름을 전하고 하나님 나라를 전하는 것으로 인해 고난을 받고 목숨을 잃었다.
사도들이 백성에게 말할 때에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이 이르러
예수 안에 죽은 자의 부활이 있다고 백성을 가르치고 전함을 싫어하여
그들을 잡으매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이튿날까지 가두었으나
- 사도행전 4:1-3
이처럼 백성들을 선동한다고 투옥당했고 유력자들의 미움을 받았다.
그들이 옳게 여겨 사도들을 불러들여 채찍질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하고 놓으니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 사도행전 5:40-42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그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한대
그들이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칠새 증인들이 옷을 벗어 사울이라 하는 청년의 발 앞에 두니라
그들이 돌로 스데반을 치니 스데반이 부르짖어 이르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하고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이르되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이 말을 하고 자니라
- 사도행전 7:54-60
그 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에서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 사도행전 12:1-2
결국에는 그 전한 바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기까지 한다.
사도 베드로는 죽음을 각오하고 작성한 이 서신서를 자신들과 같은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 전달했다.
내용상 믿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같은 믿음을 갖게 된 사람들을 말함이다.
하지만 그 믿음을 가진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면 위처럼 세상에서 고난 길이 열리는 것이 보인다.
위에서 보이듯 신성한 성품을 갖게된 믿음의 선진들은 결국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거나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다시 오셔서 왕으로 다스리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나는 잘, 멋지게, 즐겁게 세상을 살고 싶다는 것이다.
이 지점을 떠올릴 때, 내가 정말 믿음을 가진 사람인지 고민하게 된다.
헤아릴 수 없는, 영원하신 분을 알게된 사람치고는 나의 인식과 바람은 세상에 지나치게 묶여있다.
내가 매일 만나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 돈을 벌기 위한 곳에서 만나는 사람들이다.
삶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하지만 결국 돈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그러다보면 돈이 생기면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을지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하면 돈을 절약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이야기...
일에 대한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어떻게 하면 회사에 더 많은 이익을 가져올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정말 하루 종일 하고 있다.
회사에 다닌다는 것... 20대 때와는 다르게 평균 연령이 높은 곳일수록 더 이런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이 체감된다.
그렇게 하루종일 세상에 대한 이야기와 생각을 하고, 잠들기 전이나 성경 말씀을 잠깐 바라볼 때 내게 하나님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마음으로는 알고 있지만 결국 자기 전 하는 기도는 결국 하나님을 붙잡고 하는,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올법한 신세 한탄이다.
하나님 왜 이렇게 삶이 고된가요.
제가 하루종일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했는데, 왜 매일 이런 비참함을 느껴야 하는 건가요.
그렇게 실컷 하나님을 붙잡고 하소연하고 나면, 두 가지 마음이 나를 지배한다.
이성과 지식에 가까운 마음이다. 이 마음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로 하루를 마치라고 나를 독촉한다. 그러면 나는 이런 기도라도 오늘도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하는 기도를 한다.
그리고 나면 어떤 일이었든 하나님을 찾았다는 거 자체에 대한 만족감? 같은 감정이 든다. 웃긴 건 그 마음을 잘 살펴보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든 아니든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정체성에 알맞은 행위를 했다는 것에 대한 만족감이라는 것이다. 그 마음으로 하나님이 칭찬하시기를 바란다.
사실 우리 목사님 설교가 좋은 지점이 이런 부분이다.
내가 하나님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이율배반적인 감정들에 대해 똑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이런 사람이다.
나는 신성한 성품을 갖고 있다기엔 지나치게 모자라고 부족하다.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를 보면... 하나님 나라를 알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 물을표가 찍힌다.
이런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리고 해야 하는 것은 항상 정해져 있었다.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러오라 하시매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 마가복음 9:16-27
이 애타는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께 소리쳐 빌었던 이 기도야말로 내가 나 자신을 위해 해야 하는 기도이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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