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앙

부르심과 택하심 - 4

by 꾸돼지 2025. 8. 15.
320x100

많은 설교 내용이 있었지만, 요약해서 작성할 필요가 있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 베드로후서 1:4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기 위해 성도는 성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
 - 베드로후서 1:5-7

 

 

믿음에 덕을

믿음은 구원의 여정에 시작이다.

믿음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에 의해 성도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 요한복음 6:44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 에베소서 2:8-9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로마서 9:15-16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디도서 3:5

 

이상하게 내 주변에는 이단 교회에 다니는 지인들이 많다.

사실 우리 친척들이 모두 유명한 이단 교회에 다니다가 수 년 전에 모두 그 교회를 떠나기도 했었고...

이런 이야기를 주변에 많이 해서 그런가, 신앙적인 문제를 만났을 때 가끔 연락할 사람으로 나를 떠올리는 지인들이 있다.

 

최근 연락이 온 동생은 외지에서 처음으로 교회에 다니게 된 친구다.

교회 분위기에 휩쓸려 열심히 모임 자리에 참석하고 있는데, 본인의 생활과 종교 생활의 균형 문제로 연락이 왔다.

그 동생은 아직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를 하는 상황이 아닌듯 했지만, 종교 생활에 열심을 통해 구원을 얻고자 하고 있었다.

 

결정적인 부분은 아직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라는 사실이 와닿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그 친구의 믿음은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보니, 일반적인 이야기만을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성도의 성화 과정에서 예배 자리에 열심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기쁨과 헌신의 산물이지 의무의 산물은 아니다.

특히 그 반복적인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더 가까워진다고 믿거나, 그렇게 하지 않는 다른 성도들에게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개선하기보단 교회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자존감을 세우는 가식적인 행위에 불과하다.

 

 

 

덕은 스스로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기반이 된다.

은혜를 통해 믿음이 생겼다면, 덕은 그 믿음의 대상이자 목적이 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 빌립보서 2:5-8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에베소서 4:22-24

 

'덕'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라면, 그 길을 가로막는 가장 큰 적은 '나'를 중심에 두려는 본성이다.

따라서 자기 부인은 덕을 쌓기 위한 전제 조건이며 그 과정 자체이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 누가복음 9:2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갈라디아서 2:20 

 

 

 

덕에 지식을

지식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 목사님은 지식에 대해 2-3주간 설교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 히브리서 6:1-2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이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 베드로후서 1:2-3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에브라임아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유다야 내가 네게 어떻게 하랴 너희의 인애가 아침 구름이나 쉬 없어지는 이슬 같도다
그러므로 내가 선지자들로 그들을 치고 내 입의 말로 그들을 죽였노니 내 심판은 빛처럼 나오느니라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호세아 6:1-6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알게되고,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지만 알면 그것이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일까?

 

구글은 내가 검색했던 정보들과 내가 쓴 글들을 다 빅데이터로 갖고 있어서 나보다 나에 대해 더 잘 분석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구글이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내 아내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할 수 있을까?

구글이 나를 20-30년간 보살핀 내 부모님보다 나를 더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믿음이 생긴 성도는 2000년 전 로마에 의해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이스라엘 청년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것이 단순한 역사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이심을 믿게 되었다.

그런 사람이 과연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님과 하나님에 대해 궁금해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나님에 대한 궁금함이 생기지 않는다면, 과연 진짜 믿음이 생겼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나도 군대에 있을 때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군에서 나는 군종병과 비슷한 활동을 했었다.

하루는 맞후임이 내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교회에서 믿는게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러한 질문을 받은 것이 처음이기도 했지만, 도대체 무엇을 말해줘야 할지 몰라 부끄럽게도 어버버 했던 기억이 난다.

무엇이라고 답했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지만...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무엇을 믿는지에 대해 잘 몰랐고, 내 믿음에 대한 확신도 없었기에 하나님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이 부끄러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종교 생활을 했을 뿐, 믿음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감사하게도 그 날 부끄러웠던 기억 이후,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생겼고 그 마음을 기도하게 되었다.

군생활을 하는 동안 성경을 배울 기회가 생겼고, 수시로 읽을 환경에 있게 되었고, 좋은 믿음의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 기간에 내 생애 동안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셨던 나날들에 대해 더 묵상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었다.

 

지식은 깊이와 단계가 존재하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마찬가지이다.

성경에 언급된 하나님에 대한 정보들과 성도의 삶을 통해 드러나시는 실존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는 병행하여 성장해야 한다.

다만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늘어날수록 교만에 빠질 수 있는데, 이럴 때 솔로몬, 다윗이 넘어진 것과 같이 성도 역시 넘어질 수 있다.

 

성도가 가진 모든 지혜의 원천은 오직 하나님뿐이다.

 

 

320x100

'신앙'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르심과 택하심 - 3  (1) 2025.07.09
부르심과 택하심 - 2  (4) 2025.06.29
부르심과 택하심 - 1  (0) 2025.06.22
교회의 구성원에게 - 5  (1) 2025.06.17
교회의 구성원에게 - 4  (4) 2025.06.09